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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4 09:00
by SAGE_lemon

 

  세상에 존재하고 더불어 살아가게 되면 싫든 좋든 간에 이름을 갖게 된다. 특히 인간은 그 이름에 집착하는 동물이 아닐까 싶다.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것에 이름을 붙이고 싶어한다. 그래서 당연히 자신의 피를 이은 자식에게도 이름을 붙인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이름을 갖고 살아간다. 제목에 써져있는 '김태진'이라는 이름은 이번 학기에 듣게 된 수업의 교수님의 성함이다. 김태진 교수님께서 처음에 자기 이름을 소개하시면서 이름이 너무 흔하다는 우스갯 소리를 하셨다. 그 이름을 인터넷 사이트 검색창에 두드려보면 여러 사람이 검색된다. 연예인 김태진, 스포츠 선수 김태진, 리포터 김태진, 역사 속의 인물 김태진, 교수 김태진, 한국의 아무개 지역에 사는 김태진 등. 수업을 듣는 전원이 김태진 교수님의 농담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렇게 웃고 있는 나도 사실 흔하디 흔한 이름 중 하나이다. 본명인 '최은혜'도 별명인 '세이지'도 여기저기서 쉽게 볼 수 있는 이름이다. 나는 가끔 내 이름, 혹은 흔하다는 이름들을 떠올리며 생각을 한다. 이렇게 무수히 많은 이름 가운데 '나'가 존재하는 게 너무 신기하다고 말이다.

 

 

 

내 이름은 오토바이. 혹은 노란 오토바이. 또는 예술관 앞의 오토바이. 어쩌면 노란색의 자동 자전거.

 

 

  그런데 이름이란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굉장히 넓고 깊어서 그 안에 참 여러가지를 담는다. 어떤 이름을 말했을 때 그 대상에 대해 아무 것도 몰라도 머릿속에 무언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또 그것에 의미를 담고 그 속에서 정체성을 찾는다. 대상의 독특한 색깔까지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것이다. 결국 이름이 흔하다고 슬쩍 비웃으며 작게 불만을 토로하는데, 그것과 동시에 각자 속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도록 하고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름이 그렇게 커다란 거였던가.

 

 

  세상에 태어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가지 선택을 하게 되는데 나는 그것이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름이란 건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타인의 의해서 선택되어 지는 것일 때도 있지만, 그 후에 그 이름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결국 나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선택지 중에 내가 모두의 예상과 달리 조금이라도 다른 미래 선택지를 고르게 되면 내 이름은 전혀 다른 곳으로 흘러가게 된다. 내가 앞으로 걸을 인생과 그 안에 펼쳐진 수많은 운명도 함께 움직인다. 출석을 부르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목소리를 내게 되는 익숙하고 때로는 지겹게 느껴지는 그 이름이 내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좌지우지 하는 선택을 보여준다는 거다.

 

 


줄을 따라 갈 수도 있고 뒤를 돌아 다른 길을 갈 수도 있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해서 진정한 '내 이름'을 만들까?

 

 

  어쩌면 이름이라는 건 굉장히 무거운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에서 확실한 건 '내가 나라는 사실' 그 하나 뿐인 것 같은데, 그것을 가장 단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수단이 이름이니 말이다. 가장 확실한 사실=어쩌면 유일한 진실=그게 바로 이름. 이렇게 생각하면 내 이름이 흔하다고 다수 속에 있어서 나를 나타내기 어렵다고 툴툴댈 수지가 아니게 된다. 오히려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에 감사한다면 몰라도.

 

 


풍선껌을 크게 부풀려서 터뜨려도 풍선껌은 진득하게 내 입가에 붙어있는다.
내 이름도 이렇게 평생 안떨어질 걸.

 

 

  그러니까 중요한 건 포장지로써의 이름이 아니라 알맹이로써의 이름이라는 거다. 흔하다고? 지루하다고? 미완성으로 태어나 미완성인 채로 죽는 우리에게 그 흔하고 지루한 이름은 큰 사치인 건 아니고?  그렇다면 어쩌다보니 우리는 이름이라는 사치를 달고 살고 있는데 이왕이면 좀 더 빛나는 사치로 만드는게 좋지 않을까. 우리는 좀 더 자각할 필요가 있다. "내 이름은 김태진이라서 밖으로 나오기가 힘들지", "최은혜는 너무 지루하고 딱딱한 이름이야. 도통 도움이 안돼"라는 건 게으른 나의 변명밖에 안된다는 것을 말이다. 쉴새 없이 이름이 오르내리는 연예인(의 이름)이나 특이하고 예쁘게 보이는 이름을 부러워 하는 게 아니라 알맹이를 좀 더 다듬는데 더욱 힘을 쏟는다면, 나는 더욱 도드라지는 '이름'을 자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내 이름을 열심히 다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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